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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산책 12번째

by 후엔화 2022.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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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산책 12번째

독서산책 12번째

 

1. [문학] 니클의 소년들 

"텔레비전 화면 속 기자의 어깨 위로 솟은 삼나무들을 보니 살갗이 다시 뜨거워지고 말라붙은 파리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것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책을 소개할 때는 기다려 왔다.  독자로서 나는 콜슨 화이트헤드의 소설을 좋아하지만, 작가로서는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콜슨 화이트 헤드의 소설은 너무 크고 방대하며 게다가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니까. 그런 작가에게서 얻을 것은 명백하다. 사회를 보는 눈, 현실을 직시하는 힘, 그리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 태도와 질문들. 그러므로 나는 항상 콜슨 화이트헤드의 신작을 두 번 읽는다. 독자로서 감동하고, 작가로서 배우기 위해서 니클의 소년들은 플로리다 주의 한 남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허구의 장편소설이다. 차별과 폭력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무너지며, 무너진 그 삶을 어떤 힘으로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 혹은 존엄과 구원에 관한 이야기로, 어쩌면 니클이라는 감화원에서 만난 소년들, 엘우드와 터너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 틈에 어? 하고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이 책의 진가는 사실 그때부터이다. 이름으로 인물의 특징과 변별성을 만들어내는 명명법, 플롯, 반전, 그리고 주제까지 소설에서 중요한 거의 모든 요소가 이 장편소설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른이 된 소년 중 한 명이 마라톤 경기를 지켜보다, 자신은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진술을 할 때의 문장은 잊을 수 없다. 뒤에 쳐져서 절뚝거리는 사람들은 코스를 제대로 달리지 못했지만 자신의 내면을 향해 깊은 곳까지 달려갔다가 거기서 발견한 것을 쥐고 다시 밝은 곳으로 돌아왔다. 세상에 이야기는 많고 소설도 그렇다. 그러나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 정말 유용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쓰는 작가는 그만큼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콜슨 화이트헤드는 회피하고 숨겨버리고 싶은 과거의 그늘을 여기 고스란히 펼쳐 놓는다. 독자여 이것을 보았는가, 이것을 아는가, 그럼같이 생각합시다라고 제안하는 듯하다 

 

2. [ 인물예술 ]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 

"유유가 일찍이 산에 들어가 글을 읽다가 갑자기 돌아오지 않으니 유예원과 백 씨는 미쳐 달아났다고 말하였다. 말이 문밖으로 나갔으나 아비와 아내가 그렇다 하니 고향 사람들은 믿고 의심치 않았지만, 오직 유연만은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하였다" 이 책은 미시사의 대가인 내털리 제먼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에서 영감을 얻어 저술한 16세기 조선의 상속 제도에 관한 미시사 연구서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 16세기 프랑스 지방을 배경으로 오랫동안 사라졌던 남편을 둘러싼 갈등을 소재로 하듯이, 유유의 귀향 역시 16세기 대구 지방을 배경으로 가출했던 유유라는 사람이 아버지가 사망한 뒤 집으로 돌아오면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물론 집으로 돌아온 유유는 진짜 유유가 아니라 그의 행세를 하는 채응규라는 가짜 인물이었다. 종친이자 집안의 사위였던 이지가 유유의 동생인 유연에게 처음으로 그의 형이 생존해 있음을 알리면서 본격적인 사건이 전개된다. 그가 형이라는 것을 믿지 못한 유연이 그를 관아에 고발했지만, 가짜 유유가 보석을 받아 풀려난 후 사라지자 이번에는 재산을 탐내고 형을 은밀하게 살해한 파렴치범으로 몰리게 된다. 결국 유연은 신문 과정에서 고문을 견디다 못해 자백을 하고 능지처참 형을 당하게 된다. 실제 유유는 15년 뒤 우연히 발견되어 자신이 유유임을 자백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상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죄로 100대의 장형과 3년 동안의 노역형을 받은 뒤 2년 후 사망한다. 가짜 유유인 채응규는 같은 해 체포되어 압속되던 중 자결하고, 그와 내통한 것으로 의심받은 종친 이자는 고문을 받다가 사망한다. 결국 부실한 수사와 재판으로 마뎌진 유연 사건은 한 집안의 몰락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은 셈이다.  이 책의 장점은 이 사건을 소재로 삼아 필자가 조선 시대 상속 제도의 변화와 종법 질서의 확립 과정을 면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은 17세기를 전후로 하여 상속제도에서 큰 변화를 보이는데, 이는 17세기 이후 장자상속제를 기반으로 한 종법 질서가 확립되었다는 사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17세기 이전까지 조선 사회에서는 아들과 딸이 모두 균등하게 재산을 분배받았다. 사위가 처가살이를 하면서 처가의 대소사에 관여를 했고 장인과 장모가 사망한 이후에는 제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이후 경제 상황이 크게 악화되면서 장자를 중심으로 가문의 영속성을 확립하려는 종법 질서가 강화되고 이에 따라 처가살이 대신 시집살이가 보편화되면서 출가한 딸과 사위는 상속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동시에 사색당파의 본격적인 전개 과정과도 연동되어 있었다. 

 

3. [자연과학] 실험실의 진화:연금술에 시민과학까지 

"과학의 역사에서 처음을 정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과학의 오랜 진화 과정에서 개념, 이론, 도구들의 다양하고 서로 다른 요소들이 합쳐지고, 그중 어떤 것들은 다시 떨어져 나가면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과학이 태너나 느 곳은 실험실이다. 이 책의 말마따나 과학기술 연구의 8할은 실험이고, 실험의 8할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험실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른다. 그저 희 가운을 입은 약간은 치우친 천재들이 자기들끼리 아는 말로 중얼거리며 신기하고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장소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과학의 역사는 실험의 역사이며, 실험의 역사는 곧 실험실의 역사이다. 인간이 자연을 고문하여 자연의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실험실은 과학과 뗄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그곳은 초창기에는 부엌, 작업장, 혹은 서재로부터 출발하였을지도 모르나 이제는 거의 한 도시를 차지하는 입자가속기와 같은 실험실, 또는 우주정거장의 실험실까지 매우 다양한 모습을 띤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그런 실험실의 역사를 보여주면서 현대의 과학기술이 하루아침에 어떤 천재의 머리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땀과 시행 각오와 실수로부터 빚어진 것임을 알려주는 데 있다. 앞으로도 과학기술의 역사에서 이는 되풀이될 것이다. 

 

출처 : 정책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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